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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깨달음카테고리 없음 2020. 4. 21. 20:34
확실히 힘든 해이다. 시작은 회사에서였다. 아직 수습기간중인 회사는 끊임없이 해고에 대한 압박을 팀원들에게 뿌렸다. 문제는, 해고 자체는 있을 수 있지만 그 과정이 너무 예측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3주의 테스트 기간이 끝난 후 계약서를 쓰고 다시 3주의 적응기간, 그리고 3개월의 probing 기간. 이미 나는 지쳐있었고, 적어도 내가 만약 짤린다면 알고는 있어야 대비를 할 것 같아서 팀장을 찾아갔다. 그리고 역시 회사는 결코 ‘언제 나갈 수 있다’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지금 그런 말을 함부로 하게 되면 수습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불확실성에 대한 책임은 고스란히 나에게로 떠넘기겠지. 이런 것이 너무 화가 나고 눈물이 났다. 고고하게 굴기 좋아하는 내가 처절하고 모양빠지는 밑바닥도 보여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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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영화의 빛 2020. 3. 3. 12:38
계속 본다 본다 말만 하고 보지 못했던 수 많은 내 영화 리스트 중 하나였다. 음. 결과는 나쁘지 않음. 사실 스토리만 본다면 뭔가 요즘 나와도 될 것 같은 드라마… 너나할 것 없이 심리적 고통을 전시하는 것이 유행 중인 요즘, 강박장애를 심각하게 앓고 있는 성격 파탄 소설가가, 역시 마찬가지로(2000년도 전후로 트렌드가 된) 게이 이웃과 친해지며 싱글맘 웨이트리스에게 마음을 뺏기며 사랑과 정을 알아간다는 내용. 근데도 오랜만에 가슴이 따듯해지는 내용이었다. 요즘 이런 영화가 잘 안나와서 그런걸까? 사실 생각해보면 좀 강박증이 이야 넘어가도 강아지를 아파트 소각통로에 버릴정도인 냉혈한이 갑자기 사랑을 찾아간다는 내용이 좀 억지스럽기도 하고; 플롯도 어딘가 헐렁한 느낌이 드는게 잘 짜여져 있지도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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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11일과 12일 사이 어딘가의 일기카테고리 없음 2020. 2. 17. 09:42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손톱을 짧게 깎았다. 밖은 조용히 비가 내리고 있다. 청소기를 들고 집 전체를 청소했다. 도서관에 가서 잔뜩 쌓인 책 반납. 내가 볼 '로도스도 전기'를 빌렸는데 '소원 비는 나무'라는 묘한(?) 제목의 책을 발견했는데 뭔가 촉이 왔다. 그 책이구나...! 펼처보고 내용을 확인하니 역시나. 내가 예전에 자주 읽었던 프랑스 아동문학 전집에 있었던 책이었다! 이 책은 나중에 소개. 어머니 아버지용의 큰 글자 책(요즘 이거 있어서 참 좋음)을 몇권 빌리고 집으로. 소소한 일을 좀 하고 점심을 먹은 다음 레몬차를 끓이고, 등을 켰다. 키가 높은 이 등은 불빛이 아름답다. 이병우의 자장가를 들으면서 영어공부. 참 좋은 하루이다. 몇년간 계속 무엇을 열심히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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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해서 쓰는 일기일기 2019. 12. 18. 13:55
말그대로 한가해서 쓰는 일기. 근데 티스토리 왜 이렇게 글쓰기를 불편하게 해놨지? 글쓰기 버튼을 아무리 찾아도 블로그 페이지에는 없어서 결국 티스토리 홈페이지에서 아이디 클릭해서 들어옴;; 뭐냐 일단 글을 쓰려면 티스토리의 광고와 프로모션을 보아라! 뭐 이런 취지인가; 귀국한지 벌써 거의 2주가 되어간다. 시간 엄청 잘 가는구나. 그 동안 나름대로 시간을 꽉꽉 채워 보낸 것 같다. 남은 건 괜찮은 알바를 구하는 것. 알바를 구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 내게 워라밸은 힘들다. 일이 많을 때는 꼼짝 없이 일만 해서 내 일상생활(and 건강)이 파탄난다. 아마 다들 그렇지 않을까 싶다. 살은 찌고, 눈은 건조함과 렌즈로 시들어가고, 자세는 보기싫게 구부정하게 변하고. 그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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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은 건 갚자일기 2019. 11. 23. 07:08
예전에 어느 레즈비언이 쓴 글을 읽었는데, 글이 재미있게 쓰여져 있어서 가끔 그녀의 글을 찾아서 보곤 했다. 그녀의 글은 똑똑하고 신랄한 사람들이 쓰는 글처럼 대개 재미있었고 뼈를 찌르는 부분도 있었지만, 글을 읽으면서 어쩐지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몇 편의 기획이나 기사 같은 글을 제외하고, 그녀가 공개적으로 올리는 글들 대부분은 단편적인 일기 같은 것이었다. 물론 일기라는 것이 그 사람의 농밀한 - 그리고 가장 질척한 - 부분을 남김없이 보여준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 우리가 쓴 일기에서 그다지 보고싶지 않았던 나와 타인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점점 그녀의 글을 읽는 것이 불편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그 글에서는 타인에 대한 이해나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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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 The Elegy of Whiteness, 한강서고 2019. 10. 31. 06:30
은 군대에서 한번 읽은 적이 있는데, 그 때는 어렴풋하게 아름다운 글이었다는 기억만 남아 있었다. 은, 사실 소설이라고 말하기에는 좀 애매한 구석이 있는 산문같은 글이다. 한 페이지가 채 안되는 짤막한 글들이 이어져 있고, 특별하게 서사적인 내용도 없는 모든 흰 것에 관한 이야기들. 소금, 눈, 서리, 배내옷 같은 하얀 색의 사물들부터 시작해서 '하얗게 웃다' '반짝임' 같은 추상적인 이미지도 다루고 있다. 다만 이 책에서 '흰'의 이미지는 대체적으로 겨울과 한기, 공허와 연관성이 크다. 사실 심상이라는게 주관적인 영향을 받기 마련이라서 작가 개인의 성격도 담겨있는 것 같다. 만약 나였다면 조금 더 따듯한 느낌을 떠올리기도 했을 것 같다. 오후의 햇빛같은. 작가의 태어난지 얼마 안되어서 죽은 언니(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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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발도 아니고 세 발 정도 늦은 넷플릭스 영업글 <러시안 인형처럼>영화의 빛 2019. 10. 31. 06:08
사실 예전부터 재밌다고 얘기는 계속 들어서 에피소드 7까지 보다가 마지막 8편을 시작 못하고 계속 질질 끌고 있던 쇼. 이상하게 재미있는 쇼는 마지막이 되면 보고싶지 않아하는 내 단점이 이번에도 드러났다.... 좀 더 일찍 봤으면 영업글도 쓸 수 있었는데 왜 혼자서 기회를 놓치고 지랄; 사실 재미있는(혹은 맘에 드는) 쇼의 마지막을 미루고 미루는 건 '이 재미있는 걸 끝내고 싶지 않다!'라는 미련에서 상당부분 기인한다. 길모어 걸즈 볼때는 내 이 성격을 알아서 마지막 에피를 그래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봤는데 ㅋㅋ 오늘같은 경우에는 굉장히 후회가 든다. 아무래도 계속 연이어 보면 그 감동이 더할텐데, 이 경우는 7에피소드까지는 쭈욱 보다가 마지막 에피소드를 거의 5달 후에; 보게 된 격이니. 그럼에도 불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