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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어느 레즈비언이 쓴 글을 읽었는데, 글이 재미있게 쓰여져 있어서 가끔 그녀의 글을 찾아서 보곤 했다.
그녀의 글은 똑똑하고 신랄한 사람들이 쓰는 글처럼 대개 재미있었고 뼈를 찌르는 부분도 있었지만, 글을 읽으면서 어쩐지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몇 편의 기획이나 기사 같은 글을 제외하고, 그녀가 공개적으로 올리는 글들 대부분은 단편적인 일기 같은 것이었다. 물론 일기라는 것이 그 사람의 농밀한 - 그리고 가장 질척한 - 부분을 남김없이 보여준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 우리가 쓴 일기에서 그다지 보고싶지 않았던 나와 타인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점점 그녀의 글을 읽는 것이 불편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그 글에서는 타인에 대한 이해나 배려는 찾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일기는 대체적으로 이런 식이었다.
"아 우울하고 짜증나 ->$%#$%!#)_#($%*(그 외에 자기 마음에 들지 않거나 자기 바운더리 밖의 것들 다 욕함)"
처음에는 '좀 말이 쎄네...'싶다가, 계속 글을 읽는 동안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가 아니냐면....
그녀는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는 하지 않으면서, 자신은 존중받기를 원하고 있다. 간혹 이런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주변에 있는 힘있는 것들은 욕을 하며 끌어내리려고 하고, 자신과 다른 것들은 틀렸다고 말하고, 낮은 것들은 무시하는 사람들.
간단히 내 생각을 말하자면 그녀의 희망사항은 택도 없는 이야기다.
우울증 환자이든 100억 갑부든, 남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기능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존재하며 그것이 잘 작동되지 않을 경우 큰 문제에 처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남들과 함께 살아가니까.
차라리 그녀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자신의 불행을 받아들이면서 대자연으로 나가 원시인으로 살겠다면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튜터링 강사인 피터와도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피터는 밴쿠버의 LGBT 피플들이 점점 거만해지고 있다고 이야기를 했다. 다. LGBT 커뮤니티 내에서 가장 파워가 강한 게이들과 레즈비언들이 다른 퀴어들을 대할 때 차별적으로 대하거나 무시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게이들은 바이섹슈얼들에게 '진짜 퀴어'가 아니라고 하거나, 레즈비언들이 트렌스젠더들에게 커뮤니티 내의 공적인 발언대를 없애려고 한다는 이야기였다. 결국 이 이야기는 일부 레즈비언들과 게이들(자신과 다르다는 이들을 배척하는)이 트럼프와 공화당을 지지할 것이라는 씁쓸한 농담으로 끝을 맺었다.
우스운 이야기이다.
자신이 받았으면 그만큼 돌려줄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사회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받기만 한다는 것은 결국 남의 것을 갈취만 한다는 이야기와 같다. 그런 인간들을 제대로 된 사회 구성원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차별을 많이 받은 기억이 있는 퀴어들이 타인을 배척하고 자신의 권리만 누린다는 것은 내가 생각하기에는 배은망덕도 그런 배은망덕이 없다.
라풀의 드랙 레이스는 지금 최고로 인기 있는 쇼 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자넬 모네는 자신이 판섹슈얼이라고 커밍아웃했다. 전세계에서 퀴어 커뮤니티가 지금처럼 커지고 힘을 가지게 된 데에는 모든 퀴어들의 힘이 있었다. 게이와 레즈비언 외에도 사회 곳곳에 숨어있는 글래스 클로짓 상태의 바이 섹슈얼들, 판 섹슈얼들, 안드로진, 트렌스젠더까지 모두. 이분법의 사회에서 '나는 남과 다르다'는 고립감과 아픔을 공감한 사람들이 힘을 보태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바이너리 아이디어에서 젠더 스펙트럼으로의 변화가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일부 퀴어들의 이러한 모습은 내게는 베풀 줄 모르는 기득권자들의 기만과 똑같이 보인다. 자신이 과거에 받았던 호의를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 베풀고 싶지 않아하는 이기심과 좁은 마음.
퀴어 피플들이라고 무조건 남들에 대한 이해의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니라는 건 오래전에 한국에서도 깨달았지만, 가시화되니 화가 나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이런 사람들이 더 화내고, 더 고통받기를 바란다. 그것이 합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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