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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들은 불꽃놀이를 옆에서 보고 싶었다> , 이와이 슌지서고 2020. 11. 8. 21:56
1993년 TV 드라마로 만들어져 이와이 슌지의 이름을 알리게 된 <쏘아올린 불꽃, 밑에서 볼까, 옆에서 볼까?>의 소설 버전.정말 오랜만에 간 도서관(그리웠다, 도서관)에서 일본 서적 코너를 두리번거리다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 이런게 운명이다! 너무 좋다.
사실 드라마를 봤을 때는 그냥 어린 시절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였고, 뚜렷한 서사구조가 없어서 좀 아쉬운 느낌의 드라마였다. 초등학교 남자아이들의 정서를 내가 공감하기 힘든 탓도 있었고. <20세기 소년>을 보면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데, 남자애들이 공차고 동네를 싸돌아다닐 동안 난 집에서 책읽고 여자애들이랑 노느라 그런 기억이 없다.
그래도 '아, 남자아이들은 첫사랑에 대해 이런 감정을 가지는구나'라고 생각을 어렴풋이나마 할 수 있었다. 혹은 '남자아이들은 이렇게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하는구나'라고도. 어찌되었든 이것은 어린 소년이 간직한 러브레터인 것이다.
소설은 드라마와는 다르게 전개된다. 드라마는 노리미치가 수영 중 발을 다치지 않았다면이라는 가정 하에 두 갈래의 이야기로 진행된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나즈나를 떠나보내는 노리미치와, 나즈나와 짧은 사랑의 도피를 하게 되는 노리미치.
이들은 극중에서는 초등학교 6학년 정도로 그려지는데, 솔직히 드라마에서 노리미치와 유스케의 비주얼은 -_-;; 거의 초등학교 1학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정말로 중학생처럼 보이는 나즈나와 상당히 많이 차이가 나서 보기에 영 어색했는데, 소설에서도 이런 신체적 차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사실, 초등학교 시기는 워낙 성장이 빠르게 이루어지는지라 개인차가 많이 나기 때문에, 생각해보면 그리 이상하지는 않다. 오히려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고려한 이와이 슌지의 섬세함이 대단하다 싶다. 결국 공감과 이해는 이런 섬세한 차이에서 오므로, 현실의 차이를 무시하게 되는 픽션은 지나치게 판타지이기 마련이다.
이런 식으로 등장인물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많아서 재미있었다. 혼혈 같아 보였던 가즈히로는 정말로 혼혈인 설정이라던지(내가 보기에 이 배우는 나중에 러브레터에서 소년 이츠키에게 쥐어터지는 그 남자애 역할의 배우와 동일인이다), 한국인이 보면 기겁할만한 미우라 선생님의 가슴을 준이치가 만지는 장난씬이라던지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즈나와 노리미치 둘만의 이야기도 있다.
나즈나는 왜 소원을 빌지 않았을까. 무슨 소원을 빌려고 했을까. 왜 노리미치에게 구슬을 줬을까?
노리미치는 나즈나와 나중에 만나게 될까?
그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떠나간 마음은 그냥 묻어둬야 한다고 한다. 그때의 마음은 지금과 같지 않기 때문에. 변해버린 모습에
환멸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은 어차피 계속 변하고, 끝나고, 생겨난다. 당연히 그때의 마음이 지금같지는 않다. 환상에 대해 아름다워하고 그리워만 하기보다는, 불꽃놀이의 모습을 찾아 헤매는 아이들처럼 실제로 보고 마음을 확인하는 것이 진심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은 살아있기 때문에.
P.S. 참고로 왜 제목이 드라마와 달리 변경되었는지는, 이와이 슈운지의 후기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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