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고

최근 읽은 책 : '여자의 빛' - 로맹 가리

월화목련 2019. 8. 10. 08:12

도서관에 빌려놓고 2주째 끝내지 못한 두 권의 책을 다 읽었다.

 

먼저 '여자의 빛'.

불치병에 걸린 자신의 애인 야니크의 자살 계획에 동조해야 하는 남자 미셸과 딸을 사고로 잃은 여자 리디아의 하룻밤의 이야기.

미셸의 인생 전부라고 할 만한 연인 야니크는 불치병에 걸려, 고통스러운 투병을 거부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를 마음먹는다. 그리고 자신이 사라지면 겪계 될 미셸을 위해, 다른 여자를 찾아 꼭 사랑하라고 당부한다.

리디아는 남편의 차사고로 딸을 잃고 그 슬픔에 자신을 모두 내준 여자다. 우아하고 아름답고 선량한 그녀의 남편 또한 사고로 망가져있다. 남편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딸의 죽음에 더 이상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딸의 죽음을 잊지도 못한다.

 

둘은 우연히 만나면서 상처를 가진 이들이 서로를 알아보듯 함께하게 된다. 리디아가 미셸을 필요로 할 때는 미셸이 곁에 있어주고, 미셸이 리디아를 필요로 할 때는 리디아가 곁에 있어준다. 그리고 그것을 모두 겪고 난 후, 두 사람의 관계도 끝을 향한다.

 

로맹 가리의 몇몇 소설은 내가 좋아하는 내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주 잘 읽히는 편인데, '여자의 빛'도 그렇다.

사실 스토리나 글의 자체는 내가 공감할 만한 내용도 아니고(작품이나 성향으로 봤을 때, 그는 굉장한 사랑꾼임을 알 수 있다...), 그다지 신선하다고 할 만한 이야기도 아니었다. 하나의 작품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연인을 잃은 아픔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글을 써서 상처를 치유하려는 한 남자의 일기처럼 느껴졌다. 사랑의 고뇌에 몸부림치는 프랑스 아재(풀어헤친 셔츠를 입고, 눈물에 젖은 앞머리와 한숨을 지니고 있는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지지 않는가!)에는 공감을 못하지만, 그래도 이런 굉장한 사랑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도 사랑은 이 모습과 비슷하다. 누군가를 받아들이는 것.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고, 그럼으로써 서로가 되어가는 것.

 

 

이 책의 주제와 관련된 내용은 아니지만, 리디아의 말 중에 그래도 인상깊은 구절이 있어서 올려본다.

 

<신은 우리를 이미 패대기쳤잖아. 그런건 이제 충분하다고 말하고 싶어. 오늘날에는 어쩌면 성녀들보다 창녀들이 우리에게 해 줄 말이 더 많을지도 몰라. 창녀들에게 그런 발언을 할 권리가 더 있는지 몰라.>

 

아무렴.

성녀들은 언제나 하늘 위에 있지만, 창녀들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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