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계속 본다 본다 말만 하고 보지 못했던 수 많은 내 영화 리스트 중 하나였다. 음. 결과는 나쁘지 않음.
사실 스토리만 본다면 뭔가 요즘 나와도 될 것 같은 드라마… 너나할 것 없이 심리적 고통을 전시하는 것이 유행 중인 요즘, 강박장애를 심각하게 앓고 있는 성격 파탄 소설가가, 역시 마찬가지로(2000년도 전후로 트렌드가 된) 게이 이웃과 친해지며 싱글맘 웨이트리스에게 마음을 뺏기며 사랑과 정을 알아간다는 내용.
근데도 오랜만에 가슴이 따듯해지는 내용이었다. 요즘 이런 영화가 잘 안나와서 그런걸까? 사실 생각해보면 좀 강박증이 이야 넘어가도 강아지를 아파트 소각통로에 버릴정도인 냉혈한이 갑자기 사랑을 찾아간다는 내용이 좀 억지스럽기도 하고; 플롯도 어딘가 헐렁한 느낌이 드는게 잘 짜여져 있지도 않다. 그래도 그냥저냥 볼만한 내용. 90년대 영화는 지나치게 미니멀하거나 너무 계산된 것 같지 않아서 좋다.
게다가 그렉 키니어… 역이 꽤나 잘 어울렸다. 그냥 로맨틱코미디 영화의 잘생긴 남자 주조연 역할에 잘 맞는 배우라고 생각했는데, 게이 이웃인 사이먼 역할이 훌륭했다. 보통 이 시대에 게이 연기를 하라고 하면 섹시한 손짓을 취하거나 다리를 꼬는 등(혹자의 말에 의하면 게이 인권을 20년 정도 후퇴시키는) 여성스런 몸짓을 과장스럽게 보여주려고 하는데, 이 배우는 자연스러운 느낌을 유지하면서도 순간순간 감정을 폭발시킬 때는 꽤나 자연스럽게 mince 한 몸짓을 취하니, 연기의 재발견이 아닐 수 없다. 미모도 폭발해서 보는 내내 흐뭇하게 웃는다. 의외로 귀엽고 다정한 역할이 잘 맞지 않나 생각이 든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80~90년대를 그리워하는 건, 격변하는 사회와 그 풍요로움, 화려했던 문화에 대해서도 있겠지만, 그 외에도 이런 따듯한 느낌을 주는 영화들도 한 몫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세련되지도, 예술적이지도, 평론가의 극찬을 받을만큼 교묘하지도 않지만 그래도 타인을 궁금해하고 알아가고 싶던 시절의 이야기.